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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교회의 교사들 - 이상규 교수

2016.07.19 17:16

조회 수:1167 추천:2

                                                 교회의 교사들

                                   - 초대교회 교부들과 교부들의 가르침 -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

 

초기 기독교회에는 이단들의 출현으로 교회가 어려운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신실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갔던 지도자들도 없지 않았다. 이들의 헌신과 봉사가 있었기에 불같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고, 또 내부에서 일어난 이단들의 공격에 대처할 수 있었다. 이런 지도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교회의 교사들’(doctor ecclesiae)이었다. 이번에는 초기 기독교회에서의 교회 발전과 교리형성에 기여한 교회의 교사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교회 발전이나 교리 형성에 기여한 인물들을 칭송하여 교부’(敎父), 혹은 교회의 교부’(Pater Ecclesiae)라고도 불렀는데, 이름 그대로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교부라고 할 때, 이 말은 교회가 시작되고 교회의 가르침이 형성되던 시기에 속한 이들, 8세기 중반까지 약 700년간 문필 활동을 통해 교회의 전통과 질서, 신학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을 말한다.

즉 교부란 교회학문에 대한 공적(功績)과 그들의 삶의 모범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인정한 교회 초기의 지도자로서 이들은 일반적으로 4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첫째는 8세기 이전의 인물이어야 한다는 고대성 혹은 고전성, 둘째는 이단설이 아닌 정통교리를 주창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교리의 정통성, 셋째는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의 모범을 보여준 이여야 한다는 삶의 거룩성, 그리고 교회의 인정을 받은 이여야 한다는 교회의 인정이 그것이다.

이런 교부들이 교회의 교사이기도 했는데, 시기적으로 말할 때 최초의 세계 교회 회의였던 니케아회의(325) 이전 교부와 이후 교부로 나누는 것이 상례이다. 언어로 분류할 경우에는, 희랍어로 문필 활동을 했던 희랍 교부(Greek fathers)와 라틴어로 글을 썼던 라틴 교부(Latin fathers)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이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 of Gaul, 135~202)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을 지닌 이레니우스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소년 시절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 밑에서 지낸 기록으로 보아 135년경 소아시아의 서머나에서 출생하였고, 178년 리용 지방 감독이 되었다. 변증가들과는 달리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이단을 배척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그의 이단논박(Adversus Haereses)이라는 작품은 영지주의 이단을 비판한 대표적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이 책은 헬라어로 쓴 작품이지만 라틴어 역본만 남아 있다.

2세기 당시 이원론을 주장하는 영지주의 신학은 교회의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용어를 차용하고 심지어는 성경을 오용하여 나름대로의 신앙체계를 세워가고 있었다. 이레니우스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했던 예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715절을 인용하여 이들을 양의 옷을 도둑질하는 늑대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은 독이 든 물을 마치 청량음료인 것처럼 전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에 맞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예수님은 말씀이시자 육신을 입고 오신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했다. 영지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 교회에 영지주의의 정체와 그 위험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정통교리를 수호했다는 점에서 교회의 최초 조직신학자로 불리고 있다.

 

히폴리투스(Hippolytus, ?~235)

이레니우스의 제자인 히폴리투스는 로마교회의 신학자였다. 헬라어로 쓴 마르키온에게, 노에투스 논박(Contra Noetum) 외에도 모든 이단을 배척함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이단은 그리스도와 성경을 따르지 않고 이교철학을 따른다고 지적하였다. 그의 사도전승은 초기 기독교회의 규정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의 관행과 규정, 그리고 교회전통에 대한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그는 3가지의 죄, 곧 간음과 살인, 배교는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받을 수 있으나 교회는 이를 용서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던 엄격주의자였다. 이런 주장으로 로마의 감독 칼리스투스와 논쟁했다. 칼리스투스는 교회란 마치 깨끗한 짐승만이 아니라 더러운 짐승도 함께 들어왔던 노아의 방주와 같다고 주장하며 교회는 배교했다 할지라도 회개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클레멘트(Clement, 150~220)

150년경 아테네에서 출생한 클레멘트는 180년경 판테이누스(Pantaenus)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되었고, 스토아철학, 절충주의적인 철학사상, 풍유적 성경해석법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190년경부터 판테이누스의 뒤를 이어 교리문답학교 교장이 되어 12년간 봉사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박해 때인 202년 알렉산드리아를 떠났고, 220년경 가이사랴에서 사망하였다.

클레멘트는 기독교 복음을 어떻게 알렉산드리아에 전파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였고,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와 동시대인인 터툴리안은 철학이 모든 이단의 어머니라고 하였고, 히폴리투스도 모든 이단이 그 사상을 철학자들에게서 이끌어 온다고 하여 철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으나, 클레멘트는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철학도 신적 기원을 갖는다고 보았다. 심지어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하나님의 계시적 진리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볼 때 클레멘트는 기독교를 최고의 철학으로 보는 절충주의자였다. 이런 점에서 하르낙(Harnack)그는 기독교 복음을 헬레니즘 안에서 종교철학으로 전락시켰다라고 비판하였다.

클레멘트의 사상은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헬라인에게 주는 권고, 교사(Paedagogus, The Instructor), 잡록(Stromateis, The Miscellanies)에 나타나 있다. 헬라인에게 주는 권고는 변증적인 작품인데, 이교사상의 맹목성과 부도덕성을 비판하고(1), 유치한 이교사상을 버리고 기독교의 진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권면하고 있다(2). 교사헬라인에게 주는 권고의 속편으로 볼 수 있는데, 기독교 신앙으로 귀의한 이들을 향한 신앙생활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참된 교육자로 묘사되었다. 잡록은 여러 형태의 글을 편집한 논설집으로 책 이름을 직역하면 양탄자라고 할 수 있다. 페르시아의 양탄자처럼 다양한 색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런 제목이 붙여졌다.

 

오리겐(Origen, 185~254)

클레멘트의 제자인 오리겐은 182~18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레오니데스(Leonides)202년 셉티미우스(Septimius) 황제의 박해로 참수되었다. 이 때 그도 체포될 수 있었으나 그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옷을 감췄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세 때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데메트리우스(Demetrius)의 명을 받아 세례지원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흔히 교리문답학교 교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후에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저술에 종사하였다. 250년 데시우스(Decius) 황제 치하에서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고, 석방된 이후 3년간 생존하다가 254년 세상을 떠났다.

앞에서 언급한 클레멘트의 뒤를 이어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골격을 세웠는데, 그는 조직신학의 개척자이자 성경주석가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풍유적 성경해석에 영향을 끼쳤는데, 풍유적 해석이란 성경 본문 배후에 숨은 뜻이 있다고 여기고 그 뜻을 밝혀내는 것을 해석의 과제로 여기는데, 한국에서는 영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설교문, 주석, 기독교 교리적 작품, 변증서 등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저술이 제일원리에 관하여(Peri Archon, Concerning the First Principles)이다. 이 책은 보통 최초의 조직신학서로 간주되고 있다.

28년간 작업한 결실로 6개의 성경번역본을 대조한 헥사풀라(Hexapla)를 편찬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이나 이단들을 상대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의 변증적인 작품인 켈수스를 논박함은 초기 기독교 저작 수작으로 평가되어 왔다. 켈수스는 참 말씀이란 책에서, 고래로부터 현자들에 의해 참된 교리가 있어 왔으나 먼저는 유대인들이, 후에는 기독교인들이 변질시켰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회는 비밀조직이므로 불법단체이며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켈수스의 이 작품은 현존하지 않지만, 오리겐의 반박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오리겐은 이 켈수스의 글이 나온 지 약 70년 후에 이를 반반한 것이다. 오르겐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행하던 철학사조인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앙을 연결시키고자 했다.

 

터툴리안(Tertullian, 150~220)

라틴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터툴리안은 150~160년경 카르타고에서 출생했는데, 40세쯤 되던 195년경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문학, 수사학, 법률을 공부하였으며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과 처형을 감수하는 신자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년경부터 변증서와 이단배척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라틴어로 글을 썼으나 헬라어로 쓴 글도 남아 있다. 200년경에는 칼타고 지방 장로가 되었으나 기성교회의 타락을 보고 207년경 이단이었던 몬타누스파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 그는 삼위일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982가지 라틴어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삼위일체를 말하기 위해 본체’(本體, substantia)위격’(位格, persona)이라는 단어도 그가 처음 사용하였다. 또 그는 영혼 유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터툴리안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31편의 글이 현존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변증서, 여러 민족에게등과 같은 변증적인 작품,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이단들의 취득 시효에 관하여등과 같은 기독교 교리를 해설한 작품, 기도에 관하여, 여성들의 의복에 관하여등과 같은 기독교적 삶과 생활을 다룬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증서는 그 당시까지 나온 저술 중 가장 탁월한 저작인데, 이교(異敎)의 미신행위를 비판하고 기독교에 대한 오해에 대해 해명하면서 기독교인은 국가에 유익을 주는 자라고 변호했다.

 

키프리안(Cyprian, 200~258)

키프리안(Thascius Caecilius Cyprianus)은 라틴어로 문필 활동을 한 교회 지도자였는데, 터툴리안의 제자였고 후에 어거스틴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200년경 카르타고의 이교도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수사학과 법률학 교육을 받았다. 245년경 개종한 그는 248년부터 258년까지 칼타고교회 감독이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258년 참수되었는데, 북아프리카 지역 감독으로는 최초의 순교자였다.

키프리안에게 있어서 데시우스의 박해 하에서의 배교자 처리 문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대체로 박해 하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고백자들은 변절자들이 분명히 회개하면 다른 절차 없이 교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심화되었다. 노바투스(Novatus)를 비롯한 일부의 장로들은 분파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로마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로마의 감독 코넬리우스(Cornelius)를 반대하여 장로였던 노바티안(Novatian, 노바투스와 다른 인물)은 배교자 처리문제에 있어서 보다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교회에서 분파운동을 일으켰다. 교회의 순결과 용서하는 사랑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는 교회사의 오랜 논쟁이었다. 키프리안은 이전의 입장을 완화하여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배교자였다 할지라도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키프리안은 박해를 겪고 난 혼란기에서 교회의 질서 문제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하여 감독에 의해 지배되는 가톨릭교회 외에 다른 교회가 없음을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Salus extra ecclesiam non est)는 말이 생겨났다. 키프리안은 서방교회 저술가 중에서 유아세례를 주창한 첫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문헌으로는 교회의 일체성에 관하여81통의 편지가 남아 있다.


암브로스(Ambrose, 339~397)

339년 골 지방의 트리에르(Trier)에서 출생한 그는 부친이 사망한 후 자녀교육에 관심이 깊었던 어머니를 따라 로마로 가서 수사학과 법률을 공부했다. 374년 세례를 받고 8일 후 밀란의 감독이 되었다. 암브로스는 유능한 교회 행정가이자 교회 조직가였고 설교자로 명성을 얻어 어거스틴의 회심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단 혹은 이교사상을 비판하고 국가의 교회 간섭을 배제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콘스탄틴 이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주창해 온 황제의 교회 지배권, 곧 황제-교황주의를 반대하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창하였다. 신비론성례론이라는 저서가 남아 있다.

 

제롬(Jerome, Eusebius Hieronyus, 345~419)

히에로니우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제롬은 이탈리아 달마시아(Dalmatia)의 스트리톤(Stridon)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12세경에 로마에서 헬라어, 라틴어,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19세 때인 364년 리베리우스(Liberius, 352~366)에게 세례를 받고 로마에서 수사학, 논리학 등을 공부한 그는 골 지방으로 가서 활동하였다. 후에는 안디옥으로 가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습득하고 성경연구에 진력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로마교회 감독인 다마수스 1세의 요청으로 라틴어 성경본인 벌게이트(Vulgate)역을 완성하였다. 이 라틴어본 성경이 현재까지 로마 가톨릭의 표준성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후에는 예루살렘에서 정주하였고, 420년 사망하였다.

이들이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이자 신학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의 삶의 환경, 저술, 신학적 토론은 후일 교회의 조직과 교리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상규 교수

미국 Calvin CollegeAssociated Mennonite Biblical Seminary 방문교수, 호주 Macquarie University 초기기독교연구소 연구교수, 고신대학교 부총장을 역임.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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