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작성일 2022-05-03 
원본링크 http://naver.me/GVMLnUBu 
언론사 국민일보 
기자  

1DA11340-CF89-4967-B156-2ECC626A94F7.jpeg

새천년을 바라보는 1999년 12월 31일 새로남교회 전 교우가 대전 서구 배재대에서
‘새천년맞이 한마당 잔치’를 가졌다. 새로남교회 제공

 

새로남교회의 제자훈련 첫 입학 예배는 감격적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은혜로운 일에는 시험도 뒤따랐다. 1996년 가을, 전 교우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강사님은 평소 존경하던 대구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이었다. 모든 성도가 은혜로 충만했다. 집회가 끝나는 날, 어떤 장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은혜받은 열매가 나타나는구나! 이 장로님이 교회를 위해 어떤 헌신을 하시려는 걸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장로를 대면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내 예상을 뒤엎었다. “목사님, 이제 저희 가정은 새로남교회를 떠나겠습니다.” 내 열정에 찬물이 쏟는 통보였다. 사연은 이랬다. 서울로 떠났던 전임자가 동역했던 부목사를 대전으로 내려보낼 계획을 세우고, 새로남교회 장로 몇 사람과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내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나는 성도들을 더 사랑하고 제자훈련에 매진했다.

그래도 매 주일 새로운 성도들이 교회 지하 본당을 찾았다. 성도가 늘면서 주일 낮 예배가 1, 2, 3부로 확대되는 은혜를 경험했다. 97년 3월 16일, 제2기 제자훈련이 시작됐다. 제자훈련을 수료한 교우들을 대상으로 제1기 사역훈련도 시작됐다. 거기에다 새로남교회는 같은 해 5월 예배당 신축을 위한 부지를 매입했다. 부지 매입에 이어, 평신도 성장 프로그램도 개설했고 많은 교우들의 호응을 받으며 뿌리를 내렸다.

 

C58CF33C-CA2D-4E4F-857B-612D9BDDD208.jpeg

매주 새가족들이 교회에 오면서 자리가 모자라 계단에 앉아 예배 드리는 모습. 새로남교회 제공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자유 대한에서 살게 하셨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이 북한 해방에 대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우리 교회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헌신에도 함께했다. 북한 동포 사랑의 국수 체험, 탈북 난민 보호 UN청원운동, 유진벨 재단을 통한 북한 중증 결핵환자 후원 사역 등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97년 가을, 이동원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 집회를 열었다. 목사님은 내가 서울 내수동교회 대학부 지도자로 있을 때 몇 차례 젊은이 집회를 연 인연이 있었다. 늘 나와 우리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부목사를 파송해 새로남교회 당회를 쪼개지게 했던 전임 목회자가 이번에는 직접 대전에 내려온다고 했다. 교회는 다시 쓰라린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은혜로운 주님은 그것 또한 성장통으로 바꿔 주셨다. 흔들리지 않고 꽃이 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무풍지대에서 뿌리내리는 교회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주님 앞에서 목회자의 정도를 걷는 ‘정도목회(正道牧會)’를 하겠다.’ 과거 위임목사로 초청된 나를 임시목사로 바꾸어 목회자를 흔든 목회자가 다시 돌아와 수많은 성도의 영혼을 흔들어 놓을 때의 우리 교회가 감내했던 고통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나는 이를 계기로 노회 일을 하든지, 총회 일을 하든지, 사회 일을 하든지, 책임은 내가 지고 공은 동료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 갖가지 어려움과 소용돌이 속에서 성도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신묘막측한 일이 아니겠는가. 교회 발전을 저해하고 뭉쳐 다니는 사람들이 일부 분립된 교회로 대거 떠나면서 교회는 오히려 평안해졌다. 나중엔 떠나간 사람들이 모인 그 교회가 몇 차례 더 분열됐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듣게 됐다.

목회자로서 상식에 반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해선 안 된다. 만약 그것이 진리에 대한 문제라면 우리는 두 팔을 걷고 뛰어들어 진리 수호에 나서야 하겠지만, 인생에 그런 일이 몇 차례나 있겠는가. 내 언행으로 다른 누군가의 심신에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아가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이 나와의 만남을 감사하며 자긍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97년 12월 28일, 새해를 맞기 전에 교회는 새로남 교우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월간지 ‘새로남’을 창간했다. 지금도 매월 발행되는 이 잡지를 통해 교우들은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 교우들 간 소통의 장이 될 뿐 아니라 교회를 알리는 도구로서 쓰임을 받고 있다. 새로남지를 통해 수많은 숨겨진 사연들이 알려졌다. 때로는 공감으로,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99년 12월 31일에는 배재대 21세기관에 전 교우가 모여 새천년맞이 한마당을 열었다. 주님과 함께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기쁨을 누렸다. 새해를 맞아 영적 재조정과 영적 재충만을 위해 전 교우가 40일 특별불꽃새벽기도회에 참여했다. 우리 모두가 새천년을 산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세상이 들떠 있을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새 출발에 대한 열망을 간절한 기도로 토해냈다. 이런 기도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새해맞이 전 교우 특새(특별새벽기도회), 6월 나라사랑 전 교우 특새, 새학기맞이 전 교우 특새, 연말을 정리하며 소망으로 새해를 여는 특새 등 기도의 불꽃은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로그인 없이 좋아요 추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