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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습니다

《고통과 씨름하다》를 읽고 (토마스 G 롱 지음 / 장혜영 옮김)

- 고은희 사모 (종암제일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은혜를 덧입고 매 순간 도우심과 보호하심 가운데 평안을 누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믿음의 기초마저 흔드는 삶의 크고 작은 풍랑으로 인해 혼란스럽다. 저자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럼에도 이 세상에 부당한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붙들 수 있는지를 이 책에 담고 있다.

 

기초가 흔들리다
1755년 11월 1일 그날은 만성절(All Saints' Day)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종교적이고 경건한 도시 중 하나였던 리스본에 지진이 강타했다. 교회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이날,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주께 긍휼을 외쳤건만 자비 없는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 사건은 기존 세계관의 붕괴를 가져왔으며 신앙의 기초를 뒤흔들고 선한 창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문케 만드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함과 고통의 소식들이 즐비하다. 특히 그 고통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선하신 분의 자녀에게도 고통은 비껴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동안 내가 알고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을 몰라 방황하기도 한다.

 

울부짖는 욥과 하나님의 음성
저자는 욥기를 통해 무고한 고통에 대한 신정론적 통찰을 펼친다. 욥에게 세상은 도덕적 규칙을 잘 따른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페어플레이와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의 삶을 가지고 게임을 하셨고 하나님이 규칙을 어기셨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욥의 고통은 거룩한 규례를 어겼기 때문이 아니기에 욥에게 하나님은 불공정했다. 고통과 씨름하며 울부짖는 욥에게 하나님은 욥이 가진 질서와 규칙의 체계가 애당초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신다. 욥의 것은 질서에 대한 인간의 계획으로 땅에서 하늘로 투영된 질서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에게도 욥과 같은 율법적인 사고가 긴 뿌리를 내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산다 하면서도 자신의 의로움에 갇혀 고난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고개를 든다.
 저자는 한 인간의 고통이 불공평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 우리의 도덕적 질서를 하나님께 투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되기를 원하는 것이라 평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신정론적 질문에 대한 타당한 해결을 찾지 못하리라 경고한다.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주님과의 깊은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또한 저자는 마태복음 13장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 신정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종들은 주인에게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며 질문한다. 주인은 분명 좋은 씨를 심었는데 가라지가 생긴 책임이 주인에게 있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의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항의로 저자는 이해한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야만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항의하며 울부짖는다. 이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역사냐고 따지기도 한다.
 언뜻 보면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저자는 오히려 이런 질문이야말로 신앙의 진실된 고백이라고 말한다. 용감한 항의는 하나님이 사랑 많고 공의로운 분이기를 원하는 깊고도 신실한 갈망으로부터 분출될 수 있다는 말이다. 침묵을 통한 굴복보다 고통 어린 질문 안에 보다 더 정직한 신앙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결국 기도 자체가 사실상 질문이지 않을까. 기도는 답을 얻으려는 목적보다 질문하는 그 모습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얼마나 질문을 품고 기도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답을 가지고 하나님께 동그라미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하나님의 방법, 십자가
이 항의에 대한 대답으로 주인은 자신이 가라지의 근원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하나님은 이 악을 의도하지 않으셨고 이 악의 원인이 아니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가라지를 뽑을까요”라는 종들의 두번째 질문에 주인은 가만두라고 대답함으로 우리는 알곡을 상하게 하지 않고 가라지를 뽑을 지혜가 없을뿐더러 이것은 세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인생이라는 밭으로 들어오셔서 모든 고통과 악을 뿌리 뽑지 않으시는가? 악을 처분하지 않는 것은 그분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게다가 악을 뿌리 뽑는 방식은 사실상 그분에게 다른 종류의 하나님을 요구하는 꼴이 되고 만다. 우리는 종종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이미 스케치해 놓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만 돼.’ 우리가 그려 놓은 방식대로 능력을 사용하는 절대자가 성경의 하나님과는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일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면 그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 저자는 “우리는 모두 악과 얽혀 있기에 하나님이 악을 뿌리 뽑기 위해 복수심을 불태우신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하나님은 선을 행하셔야 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선하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전능하신 분이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인간의 능력과 같지 않다. 오히려 가장 연약한 사랑을 보이셨다.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능력이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에서 신화를 기대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은 그 자체만으로는 악과 죽음을 제거하지 않았다.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상처를 통해 치료된다. 하나님은 칼의 힘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연약한 능력을 사용하신다. 결국 신앙도 신화가 아니라 서사로 완성될 것이다. 우리네 삶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완성을 향해나아갈 것이고 따뜻한 스웨터가 되어 우리에게 선물로 도착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그런데 기다림만이 전부는 아니다. 추수 때엔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태우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넣을 것이라는 마침표가 찍힐 것이다. 저자는 십자가상에서 너무나 연약해 보였던 하나님의 사랑이 종말엔 결국 승리하고 궁극적으로 악의 능력을 파괴한다는 역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은 어쩌란 말인가? 저자 역시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서 나의 고통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라고 질의한다. 하나님은 이 악과 싸우기 위해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랑의 능력으로 임하시며, 그분 자신의 방식대로 전쟁하기 위해 임하신다고 확언한다.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현재와 과거 속으로 침입하셔서 그분 자신만의 방법으로 악의 역사와 능력을 파괴하신다. 그분의 사랑의 능력은 우리 삶의 모든 공간,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으로 들어가 치유하신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고난당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승리자이시다. 지금도 우리가 볼 수 없으나 우리 대신 악과 싸우시며 결국 승리로 이끄실 장수이시다. 신앙에 기다림은 중요하나 그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승리의 결승선에 도달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이미 그분의 사랑의 성품에 각인되어 있다.

 

십자가로 이끄는 나의 고백
남편이 담임목사로 청빙된 지 1년이 못되어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고통은 그렇게 예고 없이 나에게도 찾아들었다. 아… 하나님 왜 하필 지금입니까. 이제 막 부름 받은 새로운 목회지에서 목사의 아내로, 교회의 사모로, 또 세 자녀의 엄마로 주어진 사명은 크게만 다가왔다. 도저히 지금 이 상황에서 암이라는 진단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해되지 않은 고난 앞에 무릎 꿇어 기적을 원하며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함만이 나를 둘렀다.
 교회와 남편과 세 자녀를 생각하며 눈물 가운데 주님께 묻고 또 물었을 때 성도들의 아픔과 고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아픔과 함께하라는 주님의 음
성으로 들렸다. 투병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나의 고통을 기도로 함께해 주었으며 그들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먼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셨던 동기 사모님의 진심 어린 위로와 기도를 통해 큰 힘을 얻었고 그 힘든 시간을 잘 지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고난은 동일한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또 다른 영혼들에게 치료와 위로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마치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상처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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